군주론(제3판 개역본) - 까치글방 -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질풍노도의 시절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읽었던 책.
그 책을 서른이 넘은 나이에 다시 집어들게 되었다.
단 한 줄의 문구 때문에...

"국내 최초의 이탈리아어 번역본."

나는 최초의 이탈리아어 번역본이란 단 한줄에 눈이 쏠리고 말았다.
여태까지 내가 보았던 군주론은 무엇이었단 말인가?
서점에 그 많은 군주론 번역본은 무엇이란 말인가?
마키아벨리가 쓴 글을 그대로 옮긴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정답은 중역본이이었다.
국내의 많은 번역본들은 영어판을 한글로 옮긴 중역본이었다.

까치글방에서는 제3판 개혁본을 내면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이전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이탈리아어 본을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분명 새로운 것이 있을 것이다. 
책을 든 채 바로 계산대로 달려갔다.
(충동구매라 해도 할 말이 없다.)

군주론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중역본이라고 해서 내용이 달라지지는 않으니...
당연한 결론이었다.
단... 역자가 후기에서 밝힌 대로 표현과 문장이 중역본과 차이가 났다.
(사실 달라진 것을 비교하기 위해 전에 읽었던 군주론을 다시 꺼내 보았다.
-고백하건데 도움은 크게 안 되었다. 출판사가 다르고 역자가 달랐으니...)

역자는 원본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고 한다.
예를 들어 국내 중역본에서 다양한 표현으로 번역 된 역량(virtu)을 일관 되게 역량이라고 표기했다.
이 때문에 문장이 다소 불안정해 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느낌은 확실히 중역본과 달랐다.
물론 이런 부분들에서 개인적인 호불호가 나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의역을 선호하는 독자는 이탈리아어의 느낌을 최대한 살린 표현에 거부감이 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새 책으로 읽었기 때문일까?나는 이탈리아 원전 느낌이 나는 쪽이 좋았다.
참고로 중역판보다 멋들어진 표현이 줄어들었다. 몇 몇 사람들에게 이것은 충분한 불만요소가 되지 않을까?)

까치글방의 제3판 개역본은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이전 개역본들보다 주역과 부록이 더 풍부해졌다는 것이다.
몇 몇 번역본에서는 다루지 조차 않는 부분들에 꽤 많은 페이지를 할애한 것이다.
혹자는 페이지를 늘려서 가격을 올린 것이 아니냐라고 불만을 터트릴 수 있는데.
인터넷 서점을 알아본 결과 부록이 없는 중역본보다도 저렴했다.
인터넷 서점을 이용하면 6천원대에 구입할 수 있고
(딱 6천원이 아닌 6천원대이다.)
본인처럼 오프라인 서점을 이용한다고 해도 8천원이면 구입할 수 있다.
(정가가 8천원이기 때문에.... 본인은 까치글방 출판사와 무관함을 밝혀둠.)

1줄 요약
- 보다 이탈리아 원전에 가까운 군주론, 적당한 가격과 풍부한 부록.


제목 : 군주론
저자 : 니콜로 마키아벨리
역자 : 강정인, 김경희
출판사 : 까치글방

















by 한유림 | 2010/02/16 10:46 | 트랙백 | 덧글(4)

습작가들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출판을 목표로한 습작가들을 위한 글입니다.)


바쿠만이라는 만화를 알고 있는가?
바쿠만의 작가인
오바씨(데스노트의 작가)는 독자들의 반응에 큰 스트레스를 받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바쿠만을 처음 접하는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혹시 오바씨가 독자를 향해 목소리를 높인게 아닌가...

"너희들이 잘 몰라서 그러나 본데 이 바닥이 쉬운게 아니거든?
 내가 조목조목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어."

바쿠만은 다 알다시피
만화가가 되기 위한 두 소년의 모험?을 다룬 만화책이다.
물론 소년지답게 두 사람은 초반부터 엄청난 실력을 발휘하면서 치고나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앞에는 암초가 만만치 않게 있다.

이 두 소년을 가로 막는 가장 큰 암초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재미.
독자가 느끼는 재미다.
프로를 지향한다면...
책을 내길 원한다면 독자에게 재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작중 담당자와 두 소년이 이야기 한다.
"우리가 연재를 할 수 있을까요?
담당자는 너무 어리기에 연재를 할 수 없을 것이라 생각 돌려 말한다.
이때 편집장이 나타나서 이런 말을 던진다.
"재미 있으면 된다. 재미있는 만화는 반드시 연재 된다."
장르 소설도 이와 같다.
재미있는 책이라면 재미있는 글이라면 반드시 책으로 나올 수 있다.
모 작가처럼 이건 완성이 안 되어서요. 라면서 거절하지 않는 한
절대로 책으로 나온다.

출판을 목표로 하는 습작가는 프로를 지향하는 만화가와 같다.
종종 습작가들을 보면 허상을 쫓는 광신도들 같다.
재미만 있으면 된다니.
내 소설은 그렇지 않아.

내 소설은 그렇지 않다라...
그래? 그럼 대체 너희 소설은 뭘 담고 있는 건데?
넌 어떤 글을 지향하는 건데?
세상을 천지개벽시킬만한 대사상이라도 담고 있는 건가?
보자마자 눈물이 쏙 나올만큼 감동적인 사랑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건가?

재미를 주는데 서툰 작가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일단은 말해두고 싶다.
장르 소설의 가장 큰 미덕은 재미라고 말이다.


장르에 재미보다 더 중요한 덕목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장르가 아닌 문단을 지향하길 조심스럽게 권해 본다.



by 한유림 | 2010/02/08 09:08 | 트랙백 | 덧글(12)

게임소설에 대한 삐뚤어진 시각들







얼마 전 한 후배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게임 소설 그거 막장 아닌가요?
전 그건 못 씁니다.

세간의 평을 들어 보니.
게임소설이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읽을 가치조차 없을 정도로
퀄리티가 낮은 글이라 한다.
글의 퀄리티가 낮다.
이것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오타가 많고 편집이 되지 않은 글인가?
그렇지는 않다.
일부 판타지 출판사들이 부실한 제작을 하긴 하지만
노블레스를 내고 있는 로크미디어나 시드노벨을 제작하고 있는
디엔씨미디어도 주력은 판타지 무협 소설이다.
그리고 이 두 출판사에서도 게임소설을 제법 많이 펴내고 있다.
책의 질적으로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 왜 질이 떨어진다고 느끼게 되는 것인가?
장르 소설은 장르 독자를 대상으로 하는 글이다.
즉 특정분야의 독자에 특화 된 글이라는 말이다.
특정 독자를 충분히 만족시킨다면 장르 소설은 그 본의를 다한 것이 된다.,
장르 소설은 철학적 사유를 위한 글도 아니고 비지식층을 계몽 하기 위한 글도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게임소설의 주 독자층은 낮은 연령층이다.
즉 중고교생을 위주로 초등학생까지 읽을 수 있는 소년지 형식의
소설을 목표로 한다.
게임 소설에서는 복잡한 사유나 사회비판등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재미를 줄 뿐이다.

소년 만화를 예를 들어보자 드래곤 볼에서 진지한 사회 비판이 나오던가?
과학적 객관성이나 개연성이 존재하는가?
그러나 우리는 유년기에 그 소년지들을 재미 있게 보고 자랐다.
헌데 소설이라는 이유만으로 게임소설에 여러가지 잣대를 대고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단언하고 싶다.

"장르의 미덕은 재미에 있다."


물론 게임소설을 쓰는 작가층의 나이가 적을 경우.
작가의 발언에 몇 가지 문제가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장르 자체가 무시당하고 외곡 된 평가를 받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레벨업을 하셨습니다' 라는 문장으로 2페이지 정도를 채운 글이
세간에서 책도 아니라는 욕을 먹었다.
과연 작가는 단순히 페이지를 늘리기 위해서 이렇게 썼을까?
결론적으로 그랬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가능성이다.
그 작가는 출판사의 주력 작가다.
주력 작가란 것은 출판사에서도 쉽게 대할 수 없는 위치란 것이다.
그런 작가라면 2페이지 정도를 표나지 않게 늘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단지 그가 2페이지를 늘리고 싶었다면, 간단히 편집자에게 말을 하면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아마도 문장 반복을 통한 임팩트 효과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작가는 꼭 정해져 있는 페이지 수를 맞추는 것이 아니다.
늘어날 수도 있고 줄어들 수도 있다.
연재 만화와 소설의 다른점이 바로 이것이다.
만화책을 읽다보면 작가가 나와서 이런 말을 중얼 거리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이번 페이지는 거저 먹는게 너무 많아서 원고료를 받지 않겠습니다.
즉 페이지당 돈을 받기 때문에 페이지 낭비는 곧 태만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소설은 다르다.
두 페이지를 작가의 유머나 잡담으로 활용했다고 해서 그것이 태만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페이지가 아닌 권으로 고료를 받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은 300페이지나 320페이지 이런 식이 아닌 적정한 기준선 근처에서 정해진다.
글이라는 것은 만화처럼 칸을 나눠어 딱 떨어지게 끊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결론 적으로 말하자면.
게임소설이란 소년만화와 같은 장르소설이고,
낮은 연령층에 재미를 주는 목적으로 쓰여진 글이다.
그것을 읽거나 쓰는 것 자체가 저급한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소설에 지나친 신성함을 부여한 것이 아닐까 싶다.







by 한유림 | 2008/12/01 01:27 | 판타지 | 트랙백(1) | 덧글(17)

게임은 과연 소설에 비해서 우월한가?


오늘 모 사이트에 게임회사 인사담당자님이 올리신 글을 봤다.

소설을 쓸 수 있는 기본적인 실력을 갖춘 계약직 직원을 뽑는다는 글이었다.
게임 장르는 비주얼 노벨이었는데.
그렇다면 그림(원화) 못지 않게 스토리 라인도 중요하지 않은가?
물론 스토리 원작이 따로 있다고는 하나.
실제로 게임속에서 나오는 대화나 스토리는 모두 이 사람이 써야할 텐데.
계약직으로 과연 될까 싶었다.

실제로 이런 경우는 꽤 많이 발생한다.
게임회사는 싼 값에 실력 있는 라이터를 쓰고 싶어 한다.
그러나 실력 있는 라이터는 실력 있는 일러스터만큼이나 귀하다.
(내가 그러한 실력이 있다는 말은 아니니. 테클은 피하고 싶다.)
귀한 인력을 싸게 쓸 수는 없는 노릇.
그들은 항상 쓸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라이터는 적은가?
실제로 라이터를 키워내는 학과나 대학은 극소수다.
그것도 확실하다고 할 수 없다.
문예창작과나 국문과도 라이터를 배출하지만...
게임회사에 원하는 그런 류의 라이터는 아니다.
게다가 가장 많은 졸업자를 배출하는 국문과는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과이지.
라이터가 되기 위한 곳이 아니다.
여러분들이 읽는 소설 중에 몇이나 여러분들을 만족시키는가?
여러분이 만족 못하는 소설이 바로 그 라이터들 간의 경쟁을 뚫고 살아 남은 작품이다.

그리고 실력 있는 라이터는 아직도 대접?을 받고 있다.
실력 있는 라이터라면 방송이라던가 소설 쪽에서도 상당히 대접을 받는다.
몇 몇 사람들은 ㅁㅁ도 있는데 돈을 벌지 못해요. 라고 말을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장이나 글의 수준이 높다해서 실력 있는 라이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막말로 귀여니가 큰 매출을 끌어낼 수 있다면 그는 실력 있는 라이터 인 것이다.

난 아직도 대체 시장이 많은 라이터들이 왜 싼 값에 게임회사의 요구를 만족시켜 줘야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들이 진정 괜찮은 라이터를 쓰고 싶다면 투자를 좀 더 하는게 좋지 않을까 싶다.
게임은 소설보다 우월한 것이 아니니까.




킹선생님 짤방은 보너스!

by 한유림 | 2008/11/10 16:55 | 트랙백 | 덧글(13)

공포트의 차트...






폭락장이 어이지던 시점에 어느 차트 분석가가 올렸던 파일입니다.
차트만을 본다면 공포가 느껴지지 않습니까?

딱히 올릴 테마가 없어서 테마는 게임을 선택했습니다.
코스피 온라인이라 불리는 사이버머니를 이용한 온라인 게임이니까요.

by 한유림 | 2008/11/08 13:57 | 기타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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